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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트립 8일차 (28일, 금)
[천국의 계단교회 - 세분수 교회 - 카타콤베 - 바티칸 - 트레비 분수, 스페인 광장]

 

세분수 수도원 입구 안쪽.

 

입구에 들어오게 되면 처음 보게되는 연못.

 

천국 계단 교회(SCALA COELI).
천국의 계단 교회는 사도 바울이 순교당하기 전 갇혀 있던 감옥 위에 1584년 세워진 교회(성당)이다. 이곳에서 '디모데 후서'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당 내부 지하에는 당시 감옥이 보존되어 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딤후 4:6~8)
AD 67년, 사도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의 지위를 인정받아 로마 외곽에서 참수형을 당하였다. 로마 시민권자가 아닌 기독교인들은 로마 시내 공공장소에서 십자가형이나 사자들의 밥이 되었다.

 

천국계단교회 내부의 제대. 

 

사도 바울이 순교를 기다리며 갖혀 있던 지하 감옥. 감옥에서도 복음을 전했다. (행28:30-31)

 

사도 바울이 갖힌 감옥 내부.

디모데 후서 4장 3절에는 "네가 올때에 내가 드로아의 가보의 집에 두고온 겉옷을 가지고 오고..." 라고 기록 되어 있다. 이곳에서 추위 속에 갇혀있던 사도 바울을 생각나게 한다.

 

 

세분수 교회 (Tre Pontane):
1599년 건축된 이 교회(성당)는 사도 바울이 참수 당한곳에 세워졌다. 참수 당한 머리가 세번 튀었는데 그곳에서 물이 솟아났다고 하여 세개의 분수 교회라고 부른다. 사도 바울은 AD 67년 6월29일 바로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7)

 

아피아 가도:

사도 바울이 걸었던 길. 죽음에 대한 두려움 가운데서도 주님을 만날 기쁨으로 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당시 사도 바울이 참수터까지 걸었던 돌길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행20:24)

 

 

참수형 때 사용된 돌기둥.

 

 

 

사도 바울의 머리가 잘려 떨어진 세 곳에서 분수가 솟았다. 세곳에는 작은 소성당이 만들어져 있고 사도 바울의 두상이 조각되어져 있다. 세분수 교회는 이 교회를 포함하여 지어졌고 성당 내부에는 샘터 세 곳이 위치해 있다. '트레 폰타네(Tre Fontane, Three Fountains, 세 분수, 세 샘, 세 샘터)'

 

사도 바울이 참수되어 머리가 땅에 세번 튀어 오르는 모습의 성화.

 

사도 바울이 참수 되는 모습의 부조.

 

2세기에 제작된 사계절을 의인화한 인물 네 명의 모자이크화.
오른쪽 아래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봄(VER) - 여름(AESTAS) - 가을(AUTU(MNUS)) - 겨울(HIEMS)'.

 

 

천국계단교회 옆의 수도원 정면. 입상은 성 베르나르도 상이다.

 

수도원 성당 내부.

 

세분수 교회에서 나오는 길.

 

카타콤베(Catacombe):

물고기를 그린 이 형상은 그 당시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상징이었다.

ΙΗΣΟΥΣ(Iesus:예수) ΧΡΙΣΤΟΣ(Christos: 그리스도) ΘΕΟΥ(Theou: 하나님의) ΥΙΟΣ(Uios: 아들) ΣΩΤΗΡ(Soter: 구세주) 각 단어의 첫 글자들을 연결하면 그리스어로는 물고기를 ΙΧΘΥΣ(ichtous: "익투스"라고 읽는다) 라는 단어가 만들어 진다.

 

로마의 공동묘지 아래에 땅을 파고 살던 유대인들이 서로를 확인하는 표식 생활공간과 그들의 무덤들.

 

 

 

카타콤베(Catacombe,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는 고대 기독교 지하무덤이다. 원래는 평범한 지하무덤이었는데 로마에서 기독교가 공인을 받기 전에 기독교 박해를 당하게 되면서 이를 피하기 위해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숨어들었던 곳이다. 깊이는 약 40m 이고 길이는 4km정도이다.
로마법에 따라 묘지인 이곳은 로마군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기에 성당을 만들고 여러 종교의식을 행하면서 그들만의 신념을 지켜나갔다. 기독교 핍박을 받던 300년동안 약 600만 명이 카타콤 내에 묻혔다고 한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가난해서 좋은 묘지를 마련할 수 없어서 땅속으로 파고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하에 이런 거대한 무덤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 지역의 토양이 응회암 재질이라서 사람이 손쉽게 팔수 있었다. 그리고 응회암이 공기에 노출되면서 딱딱하게 굳어지는 특수한 토양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네모난 공간들은 당시 유대인들의 무덤이다. 벽면에는 유독 요나의 그림이 많다고 한다. 로마군에 붙잡혔다가 그리스도인임을 부정하여 살아났다가 회개하는 마음으로 그렸다고 한다. 

 

지하 내부 벽면의 관을 넣는 무덤 자리들.


 

 

성녀 체칠리아 조각:

성 체칠리아는 기독교를 지키기 위해 순교당하던 순간에도 의연히 찬송가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오랜 기간 뒤에 세기에 무덤을 개봉하게 되었는데 신기할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던 모습을 한 조각가가 대리석으로 조각하였다. 목 부분의 뚜렸한 도끼 자국도 조각되어 있고, 손가락 세개를 펼친것은 삼위일체를 뜻한다.

 

카타콤 주변의 죽음을 상징하는 사이프러스(Cypress, Cyprus) 나무.

 

바티칸(Vaticano) 입국 심사대.

 

바티칸 성당 외벽.

 

천지창조에 대한 외부 안내판. 이곳에서 입장하기 전에 설명을 듣고 입장한다.

시스티나 성당 내부에서는 대화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서 밖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먼저 듣는다.

 

최후의 심판에 대한 외부 안내판.

 

목욕 문화가 발달된 로마의 대리석 욕조.

 

머리털과 수염의 곡선이 매우 정교하게 조각되d어 있다. 항아리 안쪽에는 사자 얼굴이 있다.

 

라오쿤 상.

 

 

 

바닥면의 헬레나 성녀의 모자이크.

 

베드로성당 내부:

중앙에 검은 제단(발다키노. Baldacchino)이 있는데, 교황만이 이곳에서 미사를 할 수 있다.

 

 

피에타(Pieta):

'피에타'란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성모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상을 말한다. 미켈란젤로는 조각상을 볼때 위에서 본 모습을 염두해 두고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돌출되어 보이는 입체적인 기법을 사용한 그림.

 

 

성 베드로(Piazza San Pietro) 광장.

 

성 베드로 성당의 돔.

 

스위스 근위병.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

 

 

찬양: 당신은 영광의 왕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있는곳에, 오직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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